2007년 11월 25일 일요일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를 보면서...


얼마전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 두 작품간의 유사점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어느정도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간에 흐르는 뭔가 비슷한 것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땅에 발을 딪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저 같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진화론자들에게는 인간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한가지 문제에 당연하게 봉착하게 됩니다. 바로 인간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부터 무척 복잡했던 이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이 과학기술과 만나게 되면서 복잡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간에 대한 문제라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인 존재에 대해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시체는 과거 인간이었던 존재로써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살아있는 분명 인격의 주체로서 대우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구분점이 점점 모호해져가고 있습니다.

뇌사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을 통해서 (예외적으로) 뇌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장 또는 폐가 멈추었을 때 사람이 사망한 것이라면, 이 법률에서는 예외적으로 뇌사시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의제합니다. 물론 과거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뇌사한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뇌사라도 폐와 심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의제하고 장기를 이용한다는 비판과, 실제 필요성 간에 고심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시작에 대해서도 점점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태어났을 때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학설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공법과 사법의 기준이 미묘하게 다른 것은 여기에서는 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태아라는 무척 난감한 문제가 놓여 있지만, 이것에 더해서 이제는 수정란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가끔 뉴스나 잡지를 통해서 접해보면, 최근 유전학 또는 생물학의 주요 태마중 하나가 복제와, 유전자공학, 그리고 배아세포/줄기세포에 대한 부분인 듯 합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복제를 통해서 사람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수단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배아세포의 경우에는 이를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됩니다. 단순한 세포에 불과하고 아직 인간의 형태를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등의 목적으로 어느정도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발달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멋진 신세계(물론 암울하기 그지없고,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소설이지만)'처럼 만약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인간이고 어디부터 세포 또는 세포의 집단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로 발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수정란을 특정 목적에 이용한 다는 것 또한 윤리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에 더해서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쵸비츠와 같이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 로봇 또는 기계장치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문제됐던 것들은 모두 인간이란 세포 또는 유전자를 기반하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 영역을 벗어나 버립니다.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실질은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되는 순간인데 이것에 대해서 쉽게 답할 수가 없습니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문제는 모두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난점은 인간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은 뭔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인간인데도 자신과는 다른 사람, 민족, 인종에 대해서는 우리는 냉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을 인간으로서 동정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해 버릴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학살(genocide)이라든지 노예제도에서 나타납니다. 우선 상대를 비인간화 한 후라면 상대의 생명은 인종청소, 고역등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이런 점은 더해갈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인가과 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닌이상 비인간화의 과정조차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지라도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인간다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정말로 복잡한 난점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법답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풀 수 있는 도구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 사랑 이런 단어들을 우리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엮어 나가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만화영화와 소설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 생각은 피상적이기 그지 없는 것 같은데 좀더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그만큼 좀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더하는 글

이 글에서는 인간과 사람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문맥상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 둘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의미에 큰 차이를 둔것은 아닙니다.

2007년 11월 11일 일요일

쵸비츠와 200살을 맞은 사나이


쵸비츠를 무척 재미있게 본 이유중 하나가 '200살을 맞은 사나이' 때문입니다. 스토리에서 유사한 점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도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나 소설이 상당히 유사한 이야기 전개구조를 가지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목적은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A.I', '쵸비츠' 이 세가지를 비교해볼 생각이엇지만, 'A.I'을 본지 오래된데다가 다시 보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200살을 맞은 사나이(이제부터 따옴표 생략)와 쵸비츠 두가지만 비교했습니다. A.I도 거의 비슷한 이야기 전개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1. 특별한 존재로써의 로봇(컴퓨터)

우선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앤드류(주인공, 로봇)는 생각할 수 있는 로봇입니다. 기술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로봇인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의 창의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로봇은 앤드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모두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서 행동할 뿐입니다.
쵸비츠에서는 치이는, 우선 두개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형 컴퓨터를 개발한 사람이 만든 결정체와 같은 컴퓨터이기에 모두가 특별한 존재로 인식될 가치가 충분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사실 쵸비츠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상당수 등장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치이가 특별한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2. 인간과 같은 감성

1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앤드류의 양자두뇌는 인간의 뇌와 비슷한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쵸비츠에서도 컴퓨터들의 행동을 보면 인간과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게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치이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3. 소유자의 신이 내린듯한 성품

사실 앤드류도 치이도 모두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번다든지 하는 악의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로봇(컴퓨터)입니다. 하지만, 앤드류의 소유자였던 '제랄드 마틴'도 히데키도 악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앤드류를 '합중국 로봇 및 기계 인간 회사'에 넘기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앤드류가 번 돈의 일부를 앤드류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쵸비츠에서 히데키 역시 치이가 번돈을 치이가 사용하게 한다든지, 여러가지 행동을 통해서 치이를 보호합니다.

4. 이름의 의미

길가의 개나 어린 아이들의 인형조차 가지고 있는 것이 이름이지만, 두 작품의 작가들은 이를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앤드류는 작은 아씨로부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치이는 히데키로부터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더 재미있는 점을 이름을 지어준 존재가 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하기야 김춘수님의 '꽃'과 같은 시를 읽어보면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길지 않으니 시를 여기에 옮겨놨습니다.
꽃 - 열기

5. 든든한 후원자(백!)의 존재

앤드류의 백은 사실 엄청납니다. 작은 아씨로부터 폴까지 이어지는 후손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으며 특히 폴은 변호사로서 상당한 명성과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앤드류를 도와주는 존재는 'Chee Li-hsing'이란 사람입니다.(공교롭게도 쵸비츠의 주인공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하면 Chii. 'ee'를 장음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의도적이었든지 우연의 일치였든지 어쨋든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하는 측면입니다.) Chee Li-hsing은 세계의회 의원으로서 과학기술 위원회의 의장입니다.
쵸비츠 에서는 치이를 숨어서 돌보는 존재는 히비야라는 여성인데, 바로 인간형 컴퓨터 개발자의 배우자이자 쵸비츠 시리즈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돈을 마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에 초고속 인터넷회선과(어지간한 기업의 회선보다 빠르다고 합니다. 광라인 하나 끌어오는데도 돈이 얼마인데..) 엄청난 컴퓨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치이의 내부에 있는 프레이어 역시 큰 도움,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마지막에 치이와 마주치게 되는 두 컴퓨터-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심판자로서의 존재이긴 하지만-결과적으로 치이를 돕는 존재입니다.

6. 인간성의 인정을 갈구하는 로봇(컴퓨터)

두 작품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인 로봇(컴퓨터)는 무엇인가를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앤드류는 자신이 인류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기를 갈구합니다. 이미 그의 신체는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개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음식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정도까지 발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로부터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인식될 뿐입니다.
치이 역시 만화영화를 보면 귀를 제외한 부분은 외관상으로 완벽한 인간입니다. 행동또한 2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인간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로봇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치이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인데, 여기에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의 대상은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물건에 대해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뿌리깊은 금기사항입니다.) 따라서 치이가 히데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 또는 인간과 동일화 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하는 히데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실 쵸비츠에서 , 치이라는 존재가 인간성을 획득한다면,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귀엽고, 이쁘고, 사랑스럽고 하여튼 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이 로봇(컴퓨터)이라는 점입니다.
두 작품에서 두 로봇(컴퓨터)가 원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로 인류 혹은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것인데, 조금더 범위를 좁히자면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 바로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서 인류 혹은 상대방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자신이 로봇이라는 한계 자각

앤드류를 로봇이란 이유로 큰 위험을 맞이합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불량배들로부터 하마터면 분해될 뻔한 위기에 처합니다. 또한 인류 복지의 증진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한가지 한계를 계속해서 달고 있습니다. 바로 로봇이란 점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치이 역시 히데키와 계속해서 가까워지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기 직전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바로 자신이 컴퓨터(로봇)이라는 점입니다. 사랑하는데 컴퓨터(로봇)으로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 한계의 극복

결과적으로 이들 존재는 이러한 한계의 자각으로 인해서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소설 또는 만화영화는 무척 재미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우선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앤드류는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유는 인간은 죽지만 로봇은 죽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느낌이나 정황까지 정확하게 전달하기 힘드네요.) 결국 죽음을 통해서 앤드류는 인류로부터 인간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쵸비츠에서 치이는 심각한 위기를 결국 행복과 추억이라는 말의 의미를 통해서 극복합니다.(결말이 만화영화와 만화가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만화의 내용은 잘 모르기 때문에 만화영화를 기준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쵸비츠 시리즈의 개발자의 꿈이 로봇의 행복이었지만, 이미 프레이어가 실패했고 치이역시 비슷한 결말로 치닫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납니다. 추억이란 히데키의 말에 의하면 데이터처럼 삭제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초기화에도 삭제 되지 않고 기억이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히데키의 행복의 정의에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9. 로봇의 3원칙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The Three Laws of Robotics:
1.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2. A robot must obey the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3.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200살을 맞은 사나이만큼 엄격하게 쵸비츠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원칙에서 '인간(human being)'을 '사랑하는 사람(혹은 존재)'로 축소시킨다면 거의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로봇의 인간성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사람들은 로봇(컴퓨터)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200살을 맞은 사나이에서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앤드류와 리싱의 대화내용 중 일부입니다.
대화내용 보기

사실 쵸비츠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의 일부 행동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미나  미노루, 타카코의 이야기나 행동에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10의 내용은 다음 글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다음 글은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한 내용을 쓸 생각입니다.

며칠전 마지막화까지 모두 봤는데, 정말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예전에 읽었던 200살을 맞은 사나이도 한번 더 읽고.... 쵸비츠란 애니메이션은 20분씩 총 27화로 이루어져 있으니 전체를 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200살을 맞은 사나이는 2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니 넉넉하게 1시간정도면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2007년 11월 8일 목요일

요즘 쵸비츠란 만화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 케이블 방송을 통해서 방영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몇화씩 띄엄띄엄 보긴 했어도 그림도 이쁘고 스토리도 괜찮은 것 같고 나름대로 인상이 깊었던 작품인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틈틈히 한편씩 보고 있습니다.

SF 만화영화로 생각하고 나름 '정말 잘 만들었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보니 SF작품이 아니었습니다.('1984년'과 같은 소설도 SF작품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SF작품이라 해도 상관 없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A.I'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많은 수의 소설이나 영화를 지금까지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A.I'를 엄청나게 재미있게 봤기 때문인지 자꾸 SF 만화영화로만 보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인 치이(Chii)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어서 찾아보니 '200살을 맞은 사나이'의 등장인물중 한사람의 성(Chee)과 비슷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우선 중간 평가는, 그림도 이쁘고, 동작도 자연스럽고, 스토리도 꽤 탄탄합니다. 일부 19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사실 인터넷에 돌아다는 동영상이 판치는 세상이고 그렇고 심하게 노골적이지 않은 만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보통인이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에서 문제의 소지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스토리가 억지스럽거나 노골적이다기 보다는 결론 내리기 너무 머리아픈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라면 결말을 열어놓거나 살짝 회피하는 방법이 있겠지만(예를 들면 둘 또는 둘중 하나가 모종의 이유로 죽는다든지 멀리 떠난다는지, 결국 다른 존재로 변화한다 등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TV시리즈물로 기획된 만화영화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기계가 될 수도 없고, 기계가 인간이 될 수 없는 것은 거의 이쪽 작품에서는 불문율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극적인 결말의 가능성도 있지만, TV시리즈물로 기획횐 만화영화라면 거의 대부분이 행복한 결말입니다. 결국 분명히 논란에 휩싸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재미있지만, 상당히 평가절하한 의견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마지막화에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이니 최종화까지 모두 본 후 글을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註. 완결된 작품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곳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TV시리즈물 만화영화로는 예전에 동생 뒤에서 한편한편 보다가 무척 재미있게 본 '카드캡터 사쿠라'(註. 수중생물은 남자입니다.........), 투니버스에서 몇편 보고 빠져들어간 '아즈망가 대왕' 이후로는 이정도까지 재미있게 본 적이 없으니 한동한 kkoyee.com에 이 작품에 대한 글을 꽤 올릴 것 같습니다.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테일즈위버 켈티카와 주변 필드의 모습

얼마전 4.28업데이트를 하면서 켈티카와 필드 4개가 추가됐습니다. 추가된 맵은 켈티카, 바람의 숲, 노래하는 숲, 피노자레 기슭 1, 피노자레 기슭 2입니다. 이번 필드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말 멋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경음악과 그래픽 모두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잘 어울립니다.

켈티카는 광장과 서민가 두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광장은 잘 정리된 모습니다. 또한 클라드 플리마켓에 있었던 동상이 이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최근 동상 뒤에 숨어서 운영자 사칭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이유 때문인지 동상의 크기는 전보다 작아졌습니다.

아래 파란색 출구로 나가면 빈민가 쪽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광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입니다. 광장보다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입니다. 이곳 잡화점에서는 힐링 포션 특대를 살 수 있습니다. 무게가 2이고 99개까지만 한 슬롯에 겹쳐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고 회복량도 크기 때문에 사냥시 꽤 도움이 됩니다. 켈티카가 두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챕터와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빈부의 격차 또는 신분의 격차에 따른 갈등이 챕터 내용의 일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광장에서 위쪽 빨간색 출구로 나가면 노래하는 숲이 연결됩니다.


페나인 숲과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꽤 잘 만든 필드입니다. 물론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아니지만, 테일즈위버의 분위기를 잘 살렸습니다. 색의 선택도 어색하지 않고 음악도 잘 어울립니다.

노래하는 숲에서 위쪽으로 더 이동하면 바람의 숲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숲과 비슷한 분위기의 필드입니다. 대신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다릅니다.

다시 켈티가 빈민가로 이동해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피노자레 기슭 1로 갈 수 있습니다.


역시나 이전 노래하는 숲과 분위기가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의 맵입니다. 옆에 있는 몬스터가 귀엽네요.

위쪽으로 이동하면 피노자레 숲 2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피노자레 기슭 2입니다. 피노자레 기슭 1과 등장하는 몬스터를 제외하면 비슷한 맵입니다. 특히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매우 인상적인 맵입니다. 이곳에서 더 이동하면 붉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에피소드1 필드와 연결되는 최초의 맵인 듯 합니다.

이번에 추가된 맵들은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맵입니다. 왠지 붉숲부터 블루코럴 엘라라 필드까지는 좀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역적으로 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져 있고, 에피소드 2 맵인 경우가 있거나 게임 설정상 국가가 다른 경우도 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느낌이 왠지 다르다는 것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배경음악 또한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모두 괜찮은 곡들이었지만, 기존의 곡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본래의 맵들이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면 분명 엘라라나 설원, 붉숲 이후의 죽림 필드에서는 이런 느낌이 많이 사라졌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추가된 맵은 모두 이런 부분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즈위버의 맵들이 이런 느낌을 반드시 살려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분위기의 맵을 정말 좋아합니다.

에피소드2 챕터2의 이야기 내용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새로운 챕터의 일부는 이곳이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추가된 맵을 보니 새로운 필드와 앞으로 추가될 챕터, 캐릭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