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5일 일요일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를 보면서...


얼마전 '200살을 맞은 사나이'와 '쵸비츠' 두 작품간의 유사점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어느정도 미묘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간에 흐르는 뭔가 비슷한 것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땅에 발을 딪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저 같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진화론자들에게는 인간이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한가지 문제에 당연하게 봉착하게 됩니다. 바로 인간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과거부터 무척 복잡했던 이 문제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인간이 과학기술과 만나게 되면서 복잡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간에 대한 문제라면,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인 존재에 대해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시체는 과거 인간이었던 존재로써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살아있는 분명 인격의 주체로서 대우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구분점이 점점 모호해져가고 있습니다.

뇌사의 경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을 통해서 (예외적으로) 뇌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심장 또는 폐가 멈추었을 때 사람이 사망한 것이라면, 이 법률에서는 예외적으로 뇌사시 사람이 사망한 것으로 의제합니다. 물론 과거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뇌사한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뇌사라도 폐와 심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의제하고 장기를 이용한다는 비판과, 실제 필요성 간에 고심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시작에 대해서도 점점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태어났을 때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학설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공법과 사법의 기준이 미묘하게 다른 것은 여기에서는 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태아라는 무척 난감한 문제가 놓여 있지만, 이것에 더해서 이제는 수정란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가끔 뉴스나 잡지를 통해서 접해보면, 최근 유전학 또는 생물학의 주요 태마중 하나가 복제와, 유전자공학, 그리고 배아세포/줄기세포에 대한 부분인 듯 합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겠지만, 복제를 통해서 사람이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수단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배아세포의 경우에는 이를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됩니다. 단순한 세포에 불과하고 아직 인간의 형태를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 치료등의 목적으로 어느정도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발달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멋진 신세계(물론 암울하기 그지없고,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소설이지만)'처럼 만약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인간이고 어디부터 세포 또는 세포의 집단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로 발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수정란을 특정 목적에 이용한 다는 것 또한 윤리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부분에 더해서 200살을 맞은 사나이나 쵸비츠와 같이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 로봇 또는 기계장치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문제됐던 것들은 모두 인간이란 세포 또는 유전자를 기반하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이 영역을 벗어나 버립니다.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실질은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되는 순간인데 이것에 대해서 쉽게 답할 수가 없습니다. 쉽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의 문제는 모두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난점은 인간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대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은 뭔가 다른 존재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인정하기를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인간인데도 자신과는 다른 사람, 민족, 인종에 대해서는 우리는 냉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을 인간으로서 동정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해 버릴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학살(genocide)이라든지 노예제도에서 나타납니다. 우선 상대를 비인간화 한 후라면 상대의 생명은 인종청소, 고역등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이런 점은 더해갈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인가과 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닌이상 비인간화의 과정조차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생물학적 인간이 아닐지라도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인간다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정말로 복잡한 난점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모법답안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풀 수 있는 도구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 평등, 정의, 사랑 이런 단어들을 우리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들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엮어 나가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만화영화와 소설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 생각은 피상적이기 그지 없는 것 같은데 좀더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그만큼 좀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더하는 글

이 글에서는 인간과 사람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문맥상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 둘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의미에 큰 차이를 둔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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